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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클리셰 TO DO LIST -09- : 연애의 조연들
내가 모르는 그 사람의 진심, 모두가 알고 있는 그 날의 진실, 내 마음을 대신하는 친구의 조언.

우리가 흔히 K드라마에서 학습하는 로맨스 코드들이죠.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이해하지 않아도, 내 연애의 조연들이 대신 해결해주는 세계.

오해는 저절로 풀리고, 갈등은 눈 녹듯 사라지는 로맨스 월드가 현실이라고 착각하면 큰일입니다.

이번 주제는, 쓸데없는 조연 따위 없는, 진짜 내 연애를 만드는 방법을 공부해봅니다.

-글. 도람 -

<무책임한 조연들>

연애는 나와 그대가 함께 이루는 이인삼각 경기입니다. 연애를 언제 시작하고 끝낼 것인가, 연애하며 생기는 오해와 갈등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연애는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고민하고 선택해야 할 일들의 연속이죠. 연애하며 생기는 선택지들은, 모두 자신과 상대가 결정할 바입니다. 그런데도, 픽션 속의 연애는 운명과 우연이 판을 깔고, 조연들이 망설이는 나의 팔을 끌어 이루어지죠. 나의 고민과 방황은 누군가의 조언으로 완성됩니다.

드라마 속 연애의 조연들은 한결 같아요. 베프는 나보다 조금 못난 아이이고 나를 돋보이게 합니다. 그리고, 내 연애를 함께 고민하고 부추깁니다.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죠. 내가 연애를 하는지 안 하는지 온통 관심을 쏟고, 나보다 더 설레발을 칩니다. 지인들이나 직장동료들은 또 어떤가요. 검증되지 않은 연애박사가 나타나 이러쿵저러쿵 훈수를 두고, 상대의 의도를 짐작하고 추리하여 시나리오를 씁니다. 심지어, 잘못된 성고정관념을 강화하며, 연애의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는 듯 연애 개똥철학을 설파하기도 합니다.

사소한 이벤트만 생겨도, 내 주변 사람들은 연애다, 로맨스다, 사랑이다, 모두의 엔터테인먼트로 즐기기 바쁘죠. 이렇게 연애 부추기는 사회에서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엉겁결에 연애의 주인공이 되어 있습니다. 착각하기 쉽습니다. 연애를 선택하고 책임지는 주체는 오직 당사자들뿐인데, 모두가 우리 연애를 보장하고, 보호할 거라고 말이죠. 모두가 내 연애를 알고 있다 해도, 연애가 끝날 때 내 마음과 상처를 책임지는 조연은 아무도 없습니다.

<내 연애의 진짜 편집자>

내 로맨스의 편집자는 오직 나 자신.
주변인들에게 내 인간관계를 상담하나요. 그들의 말대로 움직이고 있나요. 내가 책임질 수 없는 말과 행동을 한 적 있나요. 본심이 아닌 선택들로 인해 관계는 어그러집니다. 주변인들이 아무리 나의 연애를 기정사실로 증명해도, 상대와 합의한 적 없다면 연애는 결코 시작할 수 없습니다. 상대의 말과 행동을 역순으로 추적하여, 상대의 마음을 짐작하고 추리하려 해도 언제나 오류는 존재합니다. 내 입장에서 각색된 말을 근거로 상대의 마음을 재구성하는 주변인들의 결론은 틀리게 되어 있습니다.

주변에서 아무리 그 사람이 날 사랑한다 증언해도, 내가 눈치를 못 채면, 없는 캐미입니다. 전부들 우리 사귀냐고 그랬는데, 왜 그 사람은 나에게 프로포즈 하지 않는지 궁금한가요. 없/었/던 캐미라니까요. 속은 것도 배신 당한 것도 아니고, 변죽만 두드리다 끝날 정도 밖에 안 되는 감정이었다는 얘기입니다. 당신 또한 그랬듯, 타인의 연애는 나의 엔터테인먼트 아니던가요. 내 인간관계에 주변의 입김이 작용하도록 방치하지 마세요.

<연애의 주연이 할 일>

DO : 내 마음은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내 감정은, 내 느낌은, 언제나 스스로 알아내야 합니다. 대부분의 연애감정이, 오해고 착각이고 기대이고 호기심이고 성욕이죠. 호감과 호의만으로는 시작할 수 없는 일이 연애입니다. 마음이 어떻게 흐르고 움직이는지, 남에게 묻지 마세요.

DO : 상대의 마음은 상대에게 물어보세요.
긴기민가 할 때는 제대로 질문하세요. 다른 사람들에게 질문하면 정답은 영영 알 수 없습니다. 주변인들은 나의 관계자이기 때문에 내가 듣기 원하는 얘기를 해줄 뿐입니다. 내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는데 어느새 사랑이 시작될 리 없습니다. 연애는 내가 알고서 시작됩니다. 나도 모르는 내 연애는 없습니다.

DON’T : 전략전술 짜지 마세요.
허세와 거짓말과 가짜 공약으로 연애를 시작해서는 안 됩니다. 운명이나 인연을 꾸며내지 마세요. 마음을 지어내지 마세요. 내가 진심이 아니면, 상대 또한 나를 속입니다.

DON’T : 연애를 가르치는 비전문가들 말을 듣지 마세요.
각자 다른 자신만의 로맨스 코드로 나를 가르치려 하는 사람들을 경계하세요. 당신은 당신의 연애를 해야 합니다. 당신이 납득하고 이해하고 선택하는 연애를 해야 합니다. 잘 모르면서 끌려가면 안 되고, 애매모호할 때는 절대로 YES라고 대답해서는 안 됩니다.

<긴가민가 할 때의 정답>
당신의 고민이 우리가 잘 될까, 안 될까, 가 되면 연애는 망합니다. 잘 되는 건 뭐고, 안 되는 건 무엇인가요. 구체적으로 방향 지을 수 없는 막연한 고민은, 오직 상대의 반응에 따라 천 갈래 만 갈래로 표류할 뿐입니다. 아닌 것 같다고 생각하면 대체로 아닌 게 맞습니다. 믿고 싶은 걸 믿고 있지는 않은지, 늘 자신의 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로맨스 코드를 가르치려 한다면, 정신을 똑띠 차려야 합니다. 당신은 오직 당신이 아는 만큼만 삶을 이해할 수 있고 사람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관계에 대한 기준을 누가 대신 정해줄 수는 없습니다.

정말로 좋은 관계를 원한다면, 시작하지도 못한 내 관계가 여기저기에서 수없이 다른 버전으로 돌아다니게 두지 마세요. 제대로 된 인연의 싹이 틀 때까지는 오직 상대와 함께 관계에 집중하여야 합니다. 출발선에 너무 많은 주변인물들이 등장하면 그 게임은 망합니다. 혼자라서 자신 없다면 시작을 마세요. 그럼, 굿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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