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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맨스 클리셰 TO DO LIST 16 : 얼굴을 들이미는 예의
‘설레는 키 차이’라는 말은 그저 사람의 외견만으로 로맨스를 소환하는, 놀랍도록 단순하게 코드화된 클리셰입니다. ‘엄마’를 ‘밥’과 연결 짓고, ‘박력’을 ‘남자다움’으로, ‘청춘’을 ‘연애’로 치환하는 것처럼 게으른 사고도 없죠. 하지만, 연애 드라마는 게으르고 뻔할수록 장르력이 높다 하겠습니다. 한결같이 뻔하고 낡아빠져 과하게 달디달지만, 인생이 씁쓸할 때 찾게 되는 불량식품의 맛, K 드라마 클리셰. 이번 칼럼에서는, 남자의 얼굴을 사용하는 폭력적인 로맨스 클리셰를 짚어봅니다.

글. 도람

<내 얼굴이 여기 있다!>

키가 큰 어른과 팔을 한껏 뻗어야 어른의 손을 잡고 함께 걸을 수 있는 어린아이의 모습을 상상해보세요. 마주 보고 대화할 수 없는 키 차이. 다정한 어른들은 아이와 눈을 맞추고 대화하기 위해서, 아이를 자신의 눈높이까지 들어올리거나, 아이의 눈높이까지 자신의 몸을 낮추어야 합니다. 이것이 서로의 차이를 배려하는 올바른 방식입니다.

우리의 주인공들은 흔히 ‘설레는 키 차이’를 디폴트로 합니다. 키가 큰 남자주인공과 키가 작은 여주자인공이 뭔가 의미심장한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 때, 보통은 키가 큰 쪽이 움직이는 편이 훈훈한 배려의 현장일 것입니다. 하지만, K 드라마는 남성과 여성의 신체 차이를 폭력적 방식으로 메꾸기 일쑤입니다.

이런 식이죠.
남주는 자신의 얼굴을 여주의 얼굴 코 앞으로 확 들이댑니다. 눈을 부릅 뜨고 말이죠. 그러면, 여주는 당황하면서 눈길을 살포시 내리죠. 조금은 수줍게, 조금은 두근대며 말이에요. 이 때 B.G.M은 샤랄라 깔리고, 조명은 샤샤샤 눈부시고, 클로즈업으로 화면은 가득 찹니다. 심지어 슬로우 모션으로 컷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표현됩니다.

자, 어서 두근댐과 설렘을 느껴버렷! 라고 드라마의 로맨스 코드는 노골적으로 말합니다. 여주는 ‘남주is 뭔들’이라고 생각하는 시청자들의 마음을 대변하여, 남주의 ‘박 to the 력’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남자주인공의 완벽하게 아름다운 얼굴이 갑작스레 가까이 다가올 때, 여자주인공은 놀라면서도 감동하고 설레야 합니다.

개인 안전거리를 예고없이 깨는 행동은 무례합니다. 그럼에도 로맨스를 예감해야 한다니, 드라마의 여자주인공도 참으로 극한 직업입니다.

<개인 안전거리의 법칙>

K드라마는 남자가 여자에게 하는 이런 행동이 ‘남자다운’ 그래서 ‘권장되는’ 로맨틱한 행동이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남자주인공의 얼굴이 개인 안전거리를 무시하고 갑자기 훅 다가올 때, 그리고, 강력한 말투와 도발적인 눈빛으로 여자주인공을 노려볼 때, 그가 전하고 싶은 내용은 보통 협박이거나 경고이기 일쑤입니다.

많은 K드라마 여자주인공들은 남자주인공이 얼굴을 들이대는 씬에서, 한번도 불쾌하다는 표현을 하지 못합니다. 하도 자주 당하니 아주 면역이 되었나 봐요.
하지만, 얼굴을 훅 들이대는 행동이 실제상황이라면 어떨까 상상해 봅시다.

당신의 얼굴이 아직 친하지 않은 사람에게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다가갈 때, 과연 당신은 편안합니까. 상대는 당신의 얼굴을 코 앞에서 보는 시야가 편안할까요. 현실에서 이런 행동을 한다면, 양쪽 모두가 적잖이 불편하고 당황스럽겠죠.

얼굴을 훅 들이대는 행동이 대체로 위협적이고 위압적이라는 사실을 대부분의 남자들은 잘 알고 있습니다. 모를 리가 없죠. [남자 X 남자]의 투샷에서 얼굴 훅 들이대기가 나온다면 그 드라마의 장르는 보통 범죄나 스릴러. 얼굴을 훅 들이대면서 내뱉을 수 있는 대사는 고운 말이기 쉽지 않습니다. 개인 안전거리를 깨는 사람은 분명히 눈을 무섭게 뜨고 노려보고 있습니다. 강력한 어투로 뭔가를 경고하거나 협박할 때, 당하는 사람은 무서울 뿐이에요.

누군가가 나에게 저런 행동을 해온다면 당신은 수줍게 눈을 내리깔고 조심스레 한 걸음 뒤로 물러나며, 상대에 대해 좋은 인상을 갖게 될까요. 아닙니다. 깜짝 놀라 뒷걸음치거나, 똑같이 화난 얼굴로 노려보겠죠. 안 친한 사이에 3초 이상 노려보면, 싸우자! 는 신호입니다. 자, 이제 당신이 멱살을 잡을 차례네요.

만약 훅 다가오는 얼굴이 천재적인 미모를 뿜어댄다면 그저 감사할까요. 아니면, 역시나 당황스럽고 기분 나쁠까요. 아무리 아름답고 대단한 얼굴이라 해도, 강렬한 감정으로 다가오면 당연히 숨이 막히고 당황스럽습니다. 진짜인지 아닌지 주변의 미모인들에게 실험을 요청해보십시오.

<내 얼굴의 적당한 위치>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개인 안전거리라는 보이지 않는 경계선이 있습니다. 낯선 타인이 나의 개인 영역 안으로 들어오면 불편합니다. 한 사람이 편안하게 생각하는 개인 영역의 크기는 문화권마다 다르고 관계마다 다릅니다. 개인차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친하지 않는 사람에게 다가갈 때는 미리 양해를 구해야 합니다.

당신에게는 타인을 불쾌하게 할 권리가 없습니다. 상대와의 거리가 어느 정도 멀고 가까워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면,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지세요. 당신은 문명인이니까요.

상대를 위협하기 위해서라면 드라마처럼 얼굴 훅 들이대기를 하세요. 그러나, 그럴 의도가 아니었고 나도 모르는 사이 얼굴을 훅 들이대는 짓을 하였다면, 얼른 허리를 바로 세우고 일정 거리 이상 떨어지세요. 갑자기 다가가서 미안합니다, 라고 정중하게 사과하세요.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라고 말해도 됩니다. 만약 3초 이상 노려보았다면, 눈을 착하게 뜨지 못한 자신을 책하며, 미안합니다, 라고 사과해야 합니다.

<얼굴이 가까워지는 로맨틱한 방법>

만약 상대가 예고없이 얼굴을 훅 들이대는 짓을 한다면, 침착하세요. 그럴 때는 같이 노려보며
1. 얼굴 좀 저리 치우시죠. 가까이서 보니까 더 못 생겼네요. 혹은
2. 갑자기 다가오면 불쾌합니다. 당장 사과하시고 앞으로는 조심하세요. 라고 대답해주시면 됩니다.
내 얼굴을 상대에 가까이 가져가는 로맨틱한 방법은 아래와 같습니다. 우선 부드러운 인상에 호감도 높은 얼굴을 준비하세요.

DO : 예의를 갖추어 질문하세요.

먼저, 눈을 착하게 뜨세요. 예의를 갖추어 “긴히 물어볼 게 있는데, 잠시 귀를 빌려도 될까요?” 라고 개인 안전거리 밖에서 조심히 이르세요. 상대가 YES라고 대답하면,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속닥속닥 할 말을 하시면 OK!

DON’T : 말하기 전에 냄새나는 것을 먹지 마세요.

당신의 머리와 얼굴에서 나는 여러가지 냄새는 생각보다 강렬합니다. 오늘 샤워를 했나요? 담배를 피웠나요? 혹시 어제나 오늘 마늘 또는 양파가 들어간 음식을 먹었나요? 이를 잘 닦았나요? 겸허히 반성해보고 나서 얼굴을 가져가 봅니다.

무례와 폭력없이 현실에서 로맨스를 이루는 좋은 방법, 러브 카운셀러에서 더 꼼꼼하게 하나하나 짚어드리겠습니다. 다음 칼럼도 기대해주세요. 언제나 당신의 연애를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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